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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 뿐자의 가르침

생애 / 가르침 / 미디어 / 갤러리


빠빠지를 만나 사람들 - 패트릭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17-08-07 20:53     조회 44


    내가 럭나우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사람은 패트릭으로 그는 파파지와 함께 자신의 집 문에 서 있었다. 12년 뒤 무니치에서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 만남은 그의 이야기를 이 책에 마지막으로 덧붙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는 파파지의 초기 서양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단순하고 진실한 사람이며, 그의 무조건적 사랑은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파파지는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자신의 구루를 찾는 일이다. 그 밖의 일은 구루의 일이다.”고 말하고는 했다. 사다나(영적 수행) 시간은 끝났다.’


    나는 1944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엔지니어이면서 사업가였고 나의 어머니는 가정주부이면서 예술가였다. 전쟁 후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나의 가족은 브라질로 이주했다. 나의 아버지는 브라질에 공장을 하나 갖고 있었다. 나는 15살이 될 때까지 사오폴로에서 자랐다. 그 뒤 독일로 다시 보내져 독일의 한 기숙학교에서 공부했다.
      내가 처음으로 영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은 그 기숙학교에서였다. 당시 나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한 교회 곁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내가 절대적으로 완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뿐 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재는 완전했다. 모든 것이 이미 내면에 있었다. 이 경험은 약 2,3분간 계속되었고, 그 순간에 나는 내 삶을 여기에 바치리라고 결심을 했다.
      나는 밤낮으로 이 경험을 다시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되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떠나기를 원했지만 부모님은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확고하셨다. ‘안 돼. 너는 먼저 시험을 보라. 그리고 난 후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착한 소년처럼 부모님의 말씀을 따랐다(웃음). 나는 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으며 가정을 이루었다. 나는 브라질에 있는 화학 산업의 한 공장에서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난 후 27세 때 나는 내가 열일곱 살 때 결심한 삶의 계획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와 버려서 그 계획이 나에게 거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루지 못한 욕망은 내가 그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갈 어떤 기회도 찾지 못한 사이에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던 것이다.
      나는 항상 돈을 많이 벌면 몇 년 뒤에는 은퇴하여 완전히 그 탐구에 내 자신을 다 바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떠났다. 그 다음해에  나는 브라질에서 매우 단순한 조건 속에서 살면서 영적 집단들에 나가기 시작했다.
      애프로 브라질리안 영적 집단들, 선禪n, 신지학회, 비파사나(통찰명상)와 하레 크리슈나를 시작으로 1982년 나는 그 기원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 영적 형제회인 수부드로 가는 나의 길을 발견했다. 이 집단에서 우리는 내적 및 외적 에너지에 굴복하는 라티한 이라는 수행을 했다. 그 수행 목표는 자연적 경향성을 따라 신을 숭배하는 내적 존재를 일깨우고 정화하는 것이었다. 수부드에서 그것은 인간적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이원론적이었다.


    이원론이라니, 무슨 뜻인가?


    수부드는 오직 하나 즉 참나 만이  더 높은 영적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와 어떤 힘 즉 두 가지, 이원론의 틀이 있다. 자각이나 깨달음이란 개념은 없다. 나는 라티한을 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지만 점점 더 베단타와 젠에 끌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J. 크리슈나무르티와 라마나 마하리쉬를 읽기 시작하면서 비이원론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갔다. 1988년 나는 내 영적 탐구를 위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독일로 돌아갔고 로버트 먼로의 헤미 싱크 테이프(hemi-sync tape of Robert Monroe)를 들으면서 호흡법을 익혔다. 어느 날 밤 잠결에 나는 흰 빛의 문자들을 보았다. 그 빛의 문자는 ‘네가 하고 있는 전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웃는 사람이다.' 그런데 웃는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았다(웃음).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여전히 외부에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나는 항상 인도 스승들과 구루들에게 관심이 끌렸고, 마침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케랄라에서 개최하고 있다는 라메쉬 발세카르 세미나에 대해 들었다. 그러나 참가비를 듣고 포기했다. 독일 조직자는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라마나 아쉬람이 좋다며 그곳으로 가보라고 제의했다. 나는 그 곳이 여태까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1990년 초 나는 3개월간의 여행으로 갔는데 3개월이 4년이 되었다.
      나는 티루반나말라이에 도착했지만 아쉬람에서 스승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생존해 있는 스승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졌다. 거기서 처음으로 나는 앤드류 코헨의 책 나의 스승은 나의 참나이다( My master is My Self)를 통해 슈리 푼자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라마나 아쉬람에서 나는 푼자지의 제자들 중 세 명을 만났다. 그들 중 한 명인 강가 싱흐는 내가 파파지를 만나는 것을 주선했고 나는 하리드와르로 가서 파파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36시간을 냄새나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하리드와르로 갔다. 오후에 도착해 파파지를 만났는데, 그는 갠지즈 강 둑 위에 있는 한 작은 숙소의 일층에 있는 매우 작고 심플한 방에 놓인 두 개의 침대 중 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주위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나는 바로 그의 절대적 존재의 긴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어디서 왔으며 이전에 어떤 영적 수행을 했는지 묻기 시작했다.
      삿상(진리와의 만남)을 나누고 차를 마신 뒤 우리는 갠지즈강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에서 돌아와 바로 그의 숙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돌아왔는데, 그와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나는 그 존재 안에서 처음으로 참나를 경험했다. 나는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지각되었다. 내가 그에게 이것에 대해 말하자 그는 ‘이것처럼 머물러라 그리고 너의 일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때가 몇 년도였나?


    그 때가 1990년 초였다. 며칠 뒤 강가지가 처음으로 자신의 남편 엘리와 도착했다. 우리는 다섯 명 혹은 여섯 명으로 된 작은 집단이었는데, 강가지가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파파지와 강가지는 꼼짝도 않고 서로를 쳐다보면서 그 방의 두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엘리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파파지에게 엎드려 절하며 ‘오 스승이시여! 너무도 은혜로우십니다!’ 하고 말했다.
      당시 파파지는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때는 대개 다가와서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고는 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람이 너무 많으면 자신이 마음을 집중하고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언급하고는 했다. 그는 밤에 일을 했다. 나는 잠을 자는 동안 그와 다른 차원에서 그와 함께 한 것을 기억한다. 아침에 그는 ‘너는 또 나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우리는 하리드와르에서 약 6주간 지냈고 그리고 파파지, 수렌드라(파파지의 아들)과 나는 기차로 럭나우에 갔다. 나중에 럭나우에  많은 사람들이 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가슴 속으로,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다.’ 고 말했다. 그 주위에 우리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수렌드라도 그의 제자라는 느낌이 있었나?


    사실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삿상에 그다지 자주 오지 않았다. 하리드와르에서 그는 대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거나 무언가를 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또 다른 차원에서, 다른 방식으로 파파지의 제자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렌드라는 해방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많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지반묵타(해방된 영혼)의 직계 후손과 조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해방을 얻는다는 말을 들었다. 럭나우에서 파파지는 수렌드라의 작은 집에서 지냈다. 그 집을 아는가? 매우...


    좁고 높다


    정확히, 그렇다. 파파지는 그 집의 뒤 위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은 매우 더웠는데, 침대 하나, 벽장 하나, 테이블 하나, 큰 라마나 마하리쉬 그림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 그는 앉아 있고는 했다. 하루에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와서 앉아 그와 대화했다. 나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자 그는 조금 더 큰 거실로 옮겼다. 거기에는 여섯 사람 혹은 일곱 사람이 앉을 수 있었다. 1990년 말에 우리는 인디라 나가르에 있는 그의 며느리 집으로 이사했다. 고팔과 지오티가 이사 들어오고, 샤일라는 매년 와서는 몇 달 머물다 가고는 했다.
     이 무렵 방문객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물결은 앤드류 코헨이 전에 가르치던 학생들이 한 차례로 휩쓸고 갔고, 그 뒤 ‘오쇼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지나갔다.  파파지의 주치의는 파파지에게 그가 더 이상 여행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계속 말해왔다. 그는 럭나우에서 머물렀고 사람들은 거기 있는 그를 찾았다. 그는 다발성 신경염을 앓고 있었다. 그는 걸을 때 발에 느낌이 없어서 걸음이 불안했다. 그의 이러한 상태는 나에게는 기회였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을 때 지팡이 같은 것을 손에 쥐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을 내 어깨에 얹고 걸었다. 나는 ’훌륭하십니다(웃음)!‘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걷는 지팡이 패트릭(웃음)! 그의 집에서는 어땠나?


    우리는 그 집에서는 명상을 할 시간이 없었다. 파파지는 누가 눈을 감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할 일이 많지 않았지만 그의 순수한 존재 앞에서는 우리는 항상 긴장했다. 항상 방심하지 않고 결코 긴장상태를 늦추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파파지 옆에서 최선을 다 하여 섬기고 싶어 경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다른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주면 매우 질투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에게 관심을 골고루 나누어주는 일을 꽤 잘했다.
      생활 및 작업 조건이 그다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여러 번 울었다. 사생활이라고는 전혀 없고, 인도의 기후와 파파지에게 계속해서 온 신경을 쓰는 바람에  편안하고 기쁘고 황홀한 그런 분위기는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스승 앞에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집 안에서는 전혀 명상을 하지 않았다. 파파지는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자신의 구루를 찾는 일이다. 그 외 모든 일은 구루의 일이다. 따라서 아무 일도 하지 마라. 그냥 여기 있으면서 시중을 들어라.'고 말하고는 했다. 나는 그를 만났고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그가 나에게 준 일을 봤을 때, 나의 이해심은 나는 인류를 섬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는 늙고 허약한, 나에게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힘세고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곳에 있을 수 있으면서 그와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은총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항상 자유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는 모든 사람을 섬기고 있고 이 일은 모두 보람된 일이고 당시로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 가슴을 열었다. 나는 찾아오는 구도자들과 강한 공감을 느꼈고 누군가가 깨우칠 때  너무나도 기뻤다. 마치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처럼.
      그는 인도에 살면서 힘든 사다나를 하는 서양인들, 즉 여러 해 동안 갠지즈강 둑이나 동굴 속 티루반나말라이에 사는 사람들을 매우 존경했다. 그들은 그와 비슷한 자들이었다. 그는 그들과 똑 같은 일을 했다. 동시에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고향에 왔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기대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럭나우는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사다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사실 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즉, 당신은 집에서 태양과 함께 살고 있다. 우산을 가지고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은 그가 어떻게 사람들의 깨우침에 촉매제가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파파지는 싯다(위대한 요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냐니(참나를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박타(신의 연인)이었다. 나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하레 크리슈나 운동을 여러 해 동안 했다고 그에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자 그는 한 사람의 위대한 크리슈나 박타로서 이 사실을 매우 좋아했다.
      한번은 그가 침대 위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두 개의 작은 무르띠들(성인들에 대한 헌신적인 그림), 그 중 하나는 붓다이고 하나는 차이딴야 마하쁘라부였다. 차이딴야 마하브라부는 수 세기 전 크리슈나의 영광을 노래하면서 황홀경에 빠져 춤을 추면서 인도를 여행하곤 했던 인도의 유명한 크리슈나 헌신자였다. 그래서 나는 이 무르띠들을 가리키며 ‘파파지! 만약 당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붓다와 차이딴야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하고 말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는 ‘차이딴야!’하고 외쳤다. 종종 우리가 슈리 크리슈나에 대해 대화하고 있을 때 그는 어떤 황홀경 속으로 빠져든 인상을 받았다. 이것이 파파지의 기본 성향이었다. 황홀경에 빠져 있는 것 말이다.


    그가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사례들에서 파파지는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쓰면서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며, 어떤 때는 사랑에 압도되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는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조용히 침묵했다.
      또, 오쇼 산야신들(오쇼의 제자들)이 왔을 때 그는 ‘나는 저들을 헌신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오쇼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는 더 많은 비파사나(자기관찰을 통한 자기변화) 사람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헌신에 대해 생각이 다 달랐다. 샨야신들은 구루 박띠(구루에 대한 헌신)에 대해 더 개방적인 것 같았다. 그들은 준비를 했다.


    파파지는 자신을 크리슈나의 고삐(헌신적인 연인)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에 있을 때 밤에는 여성의 사리를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팔에 문신을 한 덩치가 매우 큰 사람이었다. 그것은 낯선 이미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는 밤에 방에 문을 걸어 잠그고 사리를 입고 혼자 황홀경에 빠져 춤추고는 했다. 이 모든 것은 크리슈나를 매혹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 장교 는 파파지의 조수에게 그에게 너무 술을 주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술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 자기탐구에 대해 말했지 헌신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았다.


    삿상에서 파파지는 헌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옛날의 삿상’에 비교해서 삿상은 매우 헌신적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도 노래를 배우라고 종용했고, 노래와 춤이 있었고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파티였다(웃음). 이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는 파파지의 생일 날 조차도 그냥 넘어갔다.
      학생들의 자질이 달라짐으로써 지도방법도 바꾸어야했다. 비파사나 배경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선 스승 이상 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자 비파사나 사람들은 더 위축되었다. 이들은 오쇼 사람들의 파티와 의식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아무도 자기탐구를 하지 않았다. 우리의 관심은 파파지에게 시중드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진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전혀 진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내 관심은 그에게 시중드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생각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위해 거기 있어야 하고 외부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직 그가 흥미로워하는 것만을 존경해야 했다. 만약 그가 휴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그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초기에 우리는 에어컨이 없었다. 우리는 가장 간단한 음식만 먹었다. 그 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면서 다른 음식들을 가져오기 시작했고 또 누군가 에어컨, 냉장고, TV세트를 주었고, 나중에는 자동차까지 주었다. 점점 생활환경이 나아졌다. 파파지는 특히 서양 사람들의 경우 남자와 여자가 같은 집에서 함께 살면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내가 떠나고 난 뒤 그는 이층과 뒤뜰에 몇 개의 방을 만들어 커플들이 거기서 살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삶은 단순했고, 나는 그가 미국 달러로 300,000 달러나 되는 선물을 거절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일요일 종종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여 점심을 대접한 것을 기억한다. 그의 거실은 매우 작았다. 이 모든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고는 했다(웃음).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큰 기쁨을 누렸다. 에어컨은 종종 시끄럽게 소리를 내다가는 멈추어 섰고,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는 했다.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있다는 것은 당신의 일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내 생의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떠났는가?


    나에게는 샤일라 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집 안 에서는 관계를 가질 수 없었고, 그래서 얼마 뒤 우리는 떠났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어떻게 파파지와 함께 있는 것 보다 더 좋을 수 있단 말인가?


    집에서는 파파지가 원하지 않는 일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야무나가 와서 그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녀는 내 일을 많이 가져갔다. 나는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이 내게서 떠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의 말대꾸 상대가 되어주고는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힘이 점점 달렸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역할을 바꾼다는 당신 말을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당신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이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맞다(웃음)!


    비난하자고 이렇게 묻는 게 아니다. 정말로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과 그렇게 가까이 산다면, 아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산다면 그것은 오후에 커피 한잔 하러 와서 커피를 마시고 나면 집으로 가버리는 사람보다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보다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때는 내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단지 내 마음의 반영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몰랐다. 파파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는 생각을 선택했다
      3년 동안 사생활이라고는 없었다. 여름 날씨는 47도까지 올라가고 땀은 밤낮으로 흘러내렸다. 배탈은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파파지를 향해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마침내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몇 년 뒤 떠났다. 그 누구도 오랫동안 그와 지내지 못했다. 아마 그것은 파파지가 사람을 대하는 한 방식이었을지도 몰랐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일정한 시간동안 사람들과 같이 하고 어떤 시점이 되면 됐다고 하면서 다음 사람, 다음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라,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당신 질문은 그 집에서 산 적이 없는 누군가가 한 질문이다 (둘 다 웃음). 당신 이야기를 하자. 당신은 아침에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삿상에 갔다. 그 뒤 당신은 당신 집, 당신이 사는 곳, 당신의 여자 친구에게 가서 당신 일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인 자유는 전혀 없었다.
      몇 년 뒤 나는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처음 몇 달 떠나 있는 동안 나는 항상 그의 에너지, 그 깊고 깊은 에너지와 함께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나는 그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자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진리 탐구는 계속되었다. 럭나우를 떠나자마자 영적 과정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제 파파지란 분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더 가까운 것을 느낀다. 그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나는 그를 보았다. 나는 그 삼년 내내 그에게 결코 굴복할 수 없었다. 결코. 그는 그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를 떠난 지 2년 뒤에 파파자를 만나러 다시 돌아왔다. 그 방문들은 매우 우호적이었고 나는 떠났던 것을 사과했다. 그런데 오! 그는 매우 행복했다...나 역시 그랬다. 그는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을 대환영했다. 나는 이제 파파지가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과 관심을 보다 잘 이해한다.


    그 사랑의 감정이 명백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한때 몸이 아팠고 파파지는 직접 나를 위해 음식을 요리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나는 다시 몸을 회복했다. 나를 너무나도 감동시킨 또 한 예는, 아침 여섯시에 함께 산책을 나가기 전 항상 마시던 커피 대신에 그가 종종 나에게 커피를 직접 끓여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집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약간은 그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었고, 우리의 몫을 차지하기에 매우 갈망했다.
      ‘마땅히 가질 자격이 있는’ 무엇을 가지지 못했을 때 우리는 침묵했다. 그는 계속 이 사랑을 사방으로 나누어주고 있었고 우리의 사다나는 그를 위해 일함으로써 그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파파지는 그와 제자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나는 나에게 복종이 일어나지 않을 때 이 연결고리를 그의 곁에 있음으로써 그에게 시중함으로써 만들기를 희망했다.
      파파지가 매우 좋아하였지만, 럭나우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 연결고리가 생기기 전에 떠나기를 원하면서 며칠만 머물려고 생각한 한 학생 이야기가 있다. 갑자기 파파지가 중병에 걸려 이 학생은 파파지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파파지가 병원에서 며칠을 머무는 바람에 이 학생은 떠나려는 계획을 연기하고 그 며칠 내내 파파지와 지냈다. 며칠 뒤 파파지는 병상에서 일어나 그 학생의 등을 치면서 ‘그래, 이제 가도돼!’ 하고 말했다. 그는 파파지가 가장 신뢰하는 학생 중의 한명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스승을 그 ‘열매'로 판단 한다면 그는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비옥한, 자양분이 많은, 풍요한 나무인가? 집에 사는 우리에게 그는 어떤 사다나도 추천하지 않았다. 우리 일을 하면서 그의 강력한 존재와 빛나는 빛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이제야 나는 그것이 얼마나 참되다는 것을, 그가 여전히 ’내‘ 발걸음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우리 모두와 함께 하고 있다. 흘러넘치는 사랑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다.


    당신은 파파지 주위에 불과 몇몇의 학생들만이 있을 때 그 집에 살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어땠으며 많은 사람들이 왔을 때 그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나?


    1990/91년에 삿상은 우리가 살고 있던 파파지의 며느리 집에 있었는데, 계절에 따라 여섯 명에서 열 명의 학생이 있었다. 이 수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늘어났다. 왜냐하면 점점 더 많은 앤드류 코헨의 옛 학생들이 파파지를 보러 왔기 때문이었다. 오쇼가 죽은 뒤에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왔다. 40명 이상이 집에서 삿상을 하기 위해 왔는데, 이들 중 많은 이들 혹은 이들 모두는 점심때까지 머물다 점심을 먹었다. 삿상과 음식은 파파지 집에서는 항상 공짜였던 것을 말하고 싶다. 나중에 우리는 집밖에 스피커를 달아 점점 늘어나는 군중들이 간이차고 안에, 지붕 위에, 집 부근의 작은 공원에 앉아서 삿상을 나눌 수 있게 했다. 그 뒤 몇몇 헌신작인 학생들은 인근의 삿상 바반에 더 큰 집을 세냈다.
      이 집은 훨씬 조용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다시 많은 사람들이 점심, 차, 혹은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다. 파파지는 손님들과 어떤 가시적인 교류도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천천히 먹고 마시며 TV를 보았는데, 특히 크리킷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거기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그는 집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의 강력한 침묵의 중심이었다.


    당신은 깨달았는가?


    나는 내가 깨달은 자인지 아니면 깨닫지 못한 자인지 알 수 없다. 파파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와 같은 외파나 내파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점진적이었다.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다. 혹은 침묵에서 비롯되는 기쁜 존재의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그때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나’에 가깝다. 수십 년이 지난, 최근에야, 그다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떤 자연적 존재의 상태가 존재한다. 변화가 일어나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럭나우에 있는 집에서 나는 생각들 사이에 이 광휘를 종종 갖고는 했다. 일정한 시간동안 이 공간은 더 커졌다. 젖은 나무, 목탄, 화약 이야기를 아는가? 라마나 마하리쉬는 세 종류의 학생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젖은 나무와 같고, 두 번째는 목탄과 같고, 세 번째는 화약과 같다. 나는 화약 팀에 속하지 않았다!


    그와 살 때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니 놀랍다.


    파파지와 육체적 형태로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복종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시 몇 년 동안의 심리치료와 중대한 건강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몇 달 전 나는 파파지와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그의 발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마사지를 마치고 나는 그의 발을 잡아 내 머리에 댔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것은 내가 그에게 복종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일은 이전 같았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복종, 이 헌신은 신비스럽다. 스승과 학생 간에 일어나는 일은 신비한, 완전한 전달이다.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알고 있다 (웃음).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항상 파파지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깨닫게 하려는 그의 열정이 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떤 눈길(일견), 어떤 경험 또는 그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부분 있어서는 결코 냉정하지 못했다. 그는 항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있었다. 누군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나는 그의 일이 그가 몸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냐니(jnani)에게 기대하는 것은 ‘초월'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이었다.
      때때로 그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고무적 이어서 최소한의 경험만으로 ‘그래, 바로 그거야! 어서 해! 하라고!’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전통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파파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본성의 일견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그러한 생각은 옳았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삿상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종의 혁명이다! 오늘날 내가 인터넷에서 삿상 페이지들을 보면서 많은 스승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럭나우에 두고 있는 것을 볼 때 내 가슴 속에서는 그 사자의 동굴에서 살았던 것에 대해 엄청난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파파지는 스승은 아는 사람,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렇다, 그리고 그는 제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래, 정확하게.


    그리고 그는 아는 자에게 끌렸다.


    정확히 보았다!



    당신은 당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한 사랑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은 참나의 사랑임을 알아라.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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