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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 뿐자의 가르침

생애 / 가르침 / 미디어 / 갤러리


빠빠지를 만난 사람들- 피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17-06-06 19:07     조회 125



    피  터

    참나와 참나로써 나와 피터와의 만남은 강렬했고 완전했다. 그는 나의 오래된 친구이며 그의 새로운 연인에 의해 나에게 오게 되었다. 그들은 복종의 이 놀랍고도 달콤한 이야기를 한 다음날 나를 두고 리시케시로 떠났다. 우리는 결코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우리의 만남은 이 책을 만들 때 일어난 동시성과 흐름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파파지는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 내가 없는 완전한 복종을 일어나게 만들었다. 어떤 생각도, 복종에 대한 어떤 결정도 없었다. 이것은 저절로 일어났다.’

      나는 독일어를 쓰는 지역인 스위스, 취리히 근처의 브렘가르텐이라 불리는 마을에서 두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한 이이로 태어났다. 되돌아보면 나는 특별히 행복한 상황은 아니었던 같다. 질투와 불행의 삶을 살고 있던 우리의 부모님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상적인 어린 시절은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 달아나 자연에서, 아름다운 강 바로 옆에 있는 숲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사실상 스위스에 있는 그의 마을을 결코 떠난 적이 없었지만,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정글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에게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아주 훌륭한 이야기꾼이었고, 여행에 대한 나의 욕구를 자극했다.
      내가 젊었을 때 인도 여행에 대한 강한 충동이 마음속에 일어났다. 그때는 비틀즈가 그들의 구루지에 대해 말을 하고, ‘Let it be(있는 그대로 두어라)’라는 노래를 하든 60년대였다. 그들은 인도에 대한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많은 몫을 하였다. 나의 관심은 더 강해졌다. 나는 치과 기공사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이 직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나를 연구실에 가두어두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는 구매부서의 실습과정을 밟게 되었다.  마침내 스위스를 떠날 시기가 왔다.
      나는 처음에 유럽으로 떠났다. 프랑스 남쪽인 니스, 칸, 그리고 생트로페에서 히피족을 만났다. 가족들은 나의 여행경로에 대해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키부츠에서 일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가고 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그곳으로 가는 것은 젊은 사람이 경험하기에 좋은 것이라 여겨 그것을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웃음)! 나는 인도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때가 1971년 이었고, 나는 20살이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이 사람들에 대한 어떤 것이었다.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매우 좋아했던 넓은 시각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신비롭고 약간 고요했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더욱더 인도에 가기를 원했다.

    당신은 그곳에 도착했나요?

    마침내 나는 아프가니스탄에 갔으나 아팠다. 나는 모든 나의 소지품들을 잃어 스위스로 돌아와야 했다. 곧 나는 두 번째 시도를 했고, 마침내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를 가로지를 때 엄청난 열기가 나를 덮쳤다. 이것은 집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네팔에 있는 아주 매력적인 곳인 카트만두에 갔다. 나는 이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곳은 아주 멋진 곳이었다.
      이후에 나는 고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히피들과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우리는 늘 벌거벗은 채였다. 우리는 몇 년 동안 놀라운 시간을 가졌고, 몬순 때는 북인도에 가곤했다. 리시케시에서 나는 명상, 요가, 그리고 힌두이즘과 인도 삶의 다른 면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역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인도에 있는 것이 너무나 좋다고 느꼈다. 나는 특별히 어떤 것을 찾고 있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나는 인도의 삶의 방식과 삶의 목적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왜? 이 모든 것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특별한 구루를 찾고 지는 않았다. 단지 호기심이 있었다. 나는 사두들과 함께 리시케시에서부터 바드리나스까지 걸어서 성지순례를 갔다. 그것은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 이외에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처럼 살아가던 몇 년 후에, 나는 호주에서 온 숙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리시케시 출신의 우리의 구루 스와미 쁘레마난다는 이제 서양으로 돌아가 무엇인가 를 해야 할 때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는 ‘당신들은 가서 잠깐 동안 서양의 삶을 살아라.’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이 적당하겠군.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난후에 인도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인도를 떠난다는 것은 어려웠다. 내가 서양에 있었던 오랜 시간 동안을 후회했다.
      그러나 서양인 호주에 돌아왔을 때, 나는 서양 삶의 맛을 보았다. 나는 미술의 세계에 입문하였고, 미술을 통해 세상을 항해하도록 나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 나는 결국 미술작품 딜러가 되었다. 즉시 나는 매우 빨리 성공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되는 것에 놀라웠다. 실제로 나는 결코 어떤 것을 정말로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잡지와 신문에 나에 대해 기사를 쓰곤 했고, 나는 ‘그들이 왜 이렇게 하는가(웃음)?’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갤러리를 가지고 있는가요?

    아내와 나는 8년 동안 애덜레이드에 갤러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특별한 분야 즉 종이 작품, 인쇄물과 그림 한정 판매, 그리고 나중에 다채로운 컬러 밀랍염색과 유채그림을 다루었다. 우리를 그냥 찾아온 중요한 미술가들도 우리에게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어떤 것도 결코 하지 않았다(웃음). 나는 실제로 미술 세계를 즐겼지만 나중에 이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무엇인가가 정말로 부족했다. 다시 점점 더 나는 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꼈다. 호주에서는 영적인 삶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내 삶은 미술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것이 나를 이겼다. 나는 미술품을 다루는데 있어서 부자연스러움에 괴롭기 시작했다. 이것 모두는 가끔 실제로 가짜로 여겨졌다. 이것은 모두는 완전히 정직한 것은 아니었다.

    그림을 파는 것은 게임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갤러리 그 자체는 예술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그림들에는 무언가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관람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째서 그러한가?

    그것은 대부분 사회적인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으며, 사실상 실재가 아닌 것인 배색과 컬러에 대해 그리고 그림이 왜 좋은지에 대해 모든 시간 동안 말한다. 당신은 관념적으로 말한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의 것을 원하였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다. 나는 이것에 싫증나기 시작했다. 나는 성공 역시 그리고 참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에 싫증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에 대해 책속에 무엇을 쓰거나 TV 자막에 약간 들어가기를 원하면서 성공은 감미롭게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해서,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2년 동안 호주를 여행했다. 점점 더 나 자신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나는 내가 누구이고,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 자신에 대해 찾기를 원한다는 느낌이 증가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그녀는 선원이 되기 위해 갔고, 나는 인도에 돌아갔다.
      나는 델리에 도착해 인도를 냄새 맡은 것을 기억한다. 인간적인 냄새. 이것은 정말 좋은 것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포장도로에 키스하고 싶었다. 다시 거대한 열기와 놀라움, 압도하는 더위의 느낌이 왔다. 인도에 다시 도착한 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아내와 헤어져서 약간 상처를 가지고, 리시케시에 돌아왔다. 15년간 함께 살았던 사람과 익숙해진다. 헤어지고 나니 나의 일부가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리시케시에 갔다.
      하루는 내가 하리드와르에 갔을 때 브라질에서 온 나의 친구 람다를 만났다. 그는 다음날 델리로 가서 그의 나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는 ‘오! 피터 여기서 너를 만나 반갑군. 나는 나의 구루지를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인데, 너도 같이 갈래?’라고 말했다.
      “그래. 좋다. 나는 갈 시간이 있어.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구루가 머물고 있다는 곳을 하리드와르의 골목길을 돌아갔다.

    그때까지 당신에게 다른 구루들이 있었는가?

    나는 리시케시에서 성자와 함께 삿상(진리의 만남)과 달샨(성자의 현존 안에 있음)에 참가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나를 사로잡지는 않았다. 나는 ‘이 분이 나의 구루다.’라고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나는 구루를 찾지 않았다. 이것이 일어나기로 예정된 것이라면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자유, 깨달음, 그리고 참나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확실히 무엇인가를 원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리시케시에서 많은 성자들과 스승들을 보았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놀라운 수피 여성을 만났다. 사실 나는 병원에서 그녀를 돌보게 되었다. 그녀는 리시케시 시장에서 소에 의해 상처를 입은 후에 수술을 해야 했다. 그녀는 나의 가슴을 열고, 가슴의 열쇠를 버리고, 가슴이 다시는 닫히지 않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일어났다.
      나는 이것에 대해 몇 개의 짧은 시들을 썼다. 신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들이 빠르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영적인 귀향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조절할 수 없었다.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것은 그냥 일어났고, 나는 놀라운 것을 느끼곤 하였다. 하루는 리시케시에 람 조라 다리 위를 걷고 있다가 자기 신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이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잠시 후에 다시 이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 경험은 영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하여 그러한 것들이 일어났다.

    파파지와 당신의 첫 만남에 대해서 저에게 말해 달라. 

    내가 말했듯이 나는 람다를 만났고, 그는 하리드와르에 있는 한 남자에게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방에 들어갔고, 아름다운 사람이 웃옷을 벗은 채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셔츠를 입지 않았다. 그의 팔에 문신이 있었고 놀랍도록 건장하였다. 나는 그의 현존이 너무 강력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나를 안으로 초대했다. 그는 ‘와서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나를 그 앞에 앉도록 하고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에게 물었다. ‘호주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즉시 그는 나에게 웃으며 ‘당신은 캥거루를 아는가요, 당신은 캥거루를 만져보았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연과 동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말할 시간을 찾아내어 나는 수중다이버였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우연히 찾아낸 이것에 대해 흥미진진해 했다. 그는 자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매우 행복해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말했고, 나는 완전히 사로잡혔다. 이 분과 함께 있는 것이 아름다웠다.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모든 것은 사라졌다. 나는 이 아름다운 분과 함께 있었고, 행복함을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그는 짜이(차)와 많은 쁘라사드(구루가 준 선물)를 나에게 주었다.
      몇 시간 후에 그는 ‘오케이 피터, 지금 당신은 리시케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제자들과 함께 강가를 걸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강가를 이 아름다운 분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리시케시로 돌아가라고 분명하게 명령했기 때문에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좋아, 나는 갈 거야.’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하는 것에 정말로 아쉬움을 느꼈다.
      나는 리시케시로 돌아갔지만, 이 분은 내 마음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며칠 후에 나는 ‘그 분에게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분은 나를 한 번 더 안으로 들어오라고 할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하리드와르에 갔다. 그러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그곳에 갈 때도 떠날 때도 확실히 주위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있었던 옆 도로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변경된 상태 안에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분을 아는지 묻기 시작했다. 그를 말로 설명했지만 어떤 사람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인도를 떠나기 전에 그를 찾았나?

    아니. 그러지 못했다. 나는 해외로 다시 갔고, 남아메리카에서 미국까지 세계를 여행했다. 나는 잠시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살기 위해 갔다. 나는 이 분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에게 가서 그에게 봉사하면서 완전히 복종하길 원했다. 나는 단지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저 그와 함께 있기만을 원했다. 그러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떤 것도 나를 그에게 데려가지 않았다. 2-3번 정도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묻기 위해 리시케시에 갔다. 사람들은 ‘우리의 구루를 와서 보세요.’라고 말했다. ‘아니오, 아니, 이 분이 나의 구루입니다. 나는 나의 구루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마침내 나는 찾아 나섰다. 남인도에 있는 모든 구루지들을 만났고, 사람들은 럭나우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해 말했다. ‘아니오, 아니, 나는 이 아름다운 분을 찾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1994년 1월 어느 날 나는 서부 벵갈에 있는 여자 친구를 방문하러 갔다. 나는 리시케시에서 만난 이 소녀와 사랑에 빠졌었다. 그녀는 서부 벵갈에서 일하기 위해 이전부터 준비했기 때문에 떠났다. 그녀는 나에게 만나러 오라고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매우 불행했다. 그래서 24시간 후에 떠났다. 리시케시에 다시 돌아가길 원했다. 나는 실제로 너무 상처 받았고 실망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하우드와르에서 델리까지 가는 주 노선의 기차역에 갔다.
    역원에게 가자, 그는 ‘선생님 당신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저는 단지 서쪽으로 가는 다음 기차를 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가고자 하는 곳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아니오, 아니, 단지 저를 다음 기차에 태워주세요. 저는 가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저 여기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곧 기차가 올 겁니다. 좌석 표는 드릴 수 없습니다.’
    ‘제발 저에게 표를 한 장 주세요.’
    ‘저 기차가 가는 곳을 알고 싶지 않습니까?’
    ‘좋아요. 당신이 저에게 말해주세요.’
    ‘ 럭나우로 갑니다.’
    ‘좋아요. 저는 럭나우에 갈 것입니다.’
    ‘럭나우라고 괜찮겠군. 나는 가서 사람들에게 지금 인기 있는 이 사람을 만날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는 럭나우에 도착했다. 오래전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주소를 하나 주었다. 나는 어떤 어려움도 없이 찾을 수 있는 인디라 나가르에 있는 삿상 하우스로 갔다. 나는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사람들은 일본식 피리와 일본식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평화로웠다. 나는 즉시 이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앉았고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이 행복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다. 음악이 멈추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서 나마스떼(전통적으로 손바닥을 함께 모으는 인사법)를 하기 위해 합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는데 이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나 그리워했던 그 분이 들어왔다. 하리드와르의 침대에 앉아 있던 바로 그 분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갑자기 내 몸 안에 놀랄만한 감동이 일어났다. 내 몸안의 모든 세포와 모든 원자가 그에게로 향하였다. 이 느낌은 설명하기 매우 어려우며, 이것은 너무도 강력했다.
      이 분은 나를 향해 걸어왔고, 나와 꽤 가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나는 그의 눈 속을 쳐다보았고, 그는 몇몇 사람들을 보다가, 그때 그의 눈이 나를 보고 내 눈 속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나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은 내가 없는 완전한 복종이었다. 어떤 생각도 없었고, 복종에 대한 어떤 결심도 없었다. 이것은 완전히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그에게 질문했고 그가 그들에게 답할 때, 그것은 그가 나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질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심지어 해야 할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이 그냥 일어났다. 이처럼 나는 머물렀다. 공휴일들이 있어서, 단지 몇 번의 삿상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때 나는 방문자들을 맞기 위해 리시케시로 돌아왔다. 방문자들은 그들의 계획이 변경되어 10일이 지연되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변했다. 파파지가 말했던 것들은 나의 마음을 통해 경험되어졌다. 어떤 이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책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생각들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두 가지 생각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잠자고 있을 때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10일을 보냈으며, 그날들 중 하루는 풀차띠로 갔다. 나는 풀차띠에 여러 번 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파지가 자주 방문했던 곳에 있고 싶어서 풀차띠에 갔다. 그는 그곳에 있는 케이브들에서 지냈다. 나는 리시케시에 살고 있었던 아티까쉬람의 내 방과 제일 가까운 오두막집에 그가 몇 년 동안 살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일들이 빠르고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함께 오고 있었다. 풀차띠를 걸어가면서 나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어떤 노력도 없이 참나-탐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에 가기 시작했다. 나는 무언가를 느끼고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풀차띠에 친나 강과 강가가 만나는 곳인, 두강이 만나는 곳 아래로 갔다.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은 평화로웠고, 나는 걸음으로 조금 지쳐있었지만, 이제는 평온해졌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한쪽 귀로는 나의 사랑스런 강가, 강가 강의 물소리를 듣고 다른 쪽 귀로는 친나 강의 물소리를 들었다. 나는 쉬면서 강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파파지가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오라 안에 나타난 아주 강렬한 빛으로 가득 찬 비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빛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의 눈을 깊이 바라보고, 나도 그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 안은 아주 즐거운 텅 빔이었다. 갑자기 나는 그가 말했던 모든 것, 늘 들던 것, 늘 읽었던 모든 가르침을 이해했다. 아주 순식간에 나는 지적으로 이해했던 모든 것이 되었다.
      ‘스승님, 당신과 나, 우리는 같습니다. 오, 정말로 우리는 같습니다. 어떤 다름도 없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당신과 강가 사이에, 나와 강가 사이에 어떤 다름도 없습니다. 이 산들, 이 바위들, 이 강들, 나는 이 모두입니다. 이것은 모두 나입니다. 어떤 다름도 없습니다.’라고 나는 파파지에게 말했다. 파파지는 큰 기쁨으로 빛나며 웃었다. 거대한 희열, 기쁨과 사랑이 있었다. 놀라운 사랑이었다. 모든 것이 변하였다. 이렇게 모든 것은 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바위는 여전히 바위였고, 태양도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사물들을 다르게 지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 속에서 내가 걸어가고 있었고, 모든 것이 나였다. 그런 관점들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구루의 은총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은총이었다. 파파지는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했다. 파파지는 그로부터 혹은 그 밖의 다른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분리감을 제거했다. 나의 눈 속을 한번 바라봄 속에서, 그는 내가 그의 눈 속을 아주 관대하게 보게 하여, 거대하고 즐거운 텅빔을 바라보게 하여, 그것이 되도록 나를 허용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구루의 은총이었다. 나는 파파지에게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감사하고, 어느 정도로 감사를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바로, 이 이야기를 함으로 당신은 그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나는 럭나우에서 몇 달 동안 살았고, 가능한 모든 삿상에 참석했다. 그것은 황금빛으로, 그의 현존으로 목욕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있는 것은 그냥 아주 즐거운 것이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의 관대함을 즐기는 것과 여기에 있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1989/90년 겨울에 하리드와르에서의 첫 만남 이후로 파파지에게 말을 하기 위해 그에게 다시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단히 환영받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은 나에게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 어쨌든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아름답고 달콤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스승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께 감사합니다.’이다. 나는 파파지를 찾아서 온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장 행운의 사람이라고 느낀다. 나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운이 좋고, 나의 스승을 찾아낸 행운의 사람이라고 느낀다.(오랜 시간의 침묵이 흐름)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저의 오랜 친구인 자그로띠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이 모든 것 밖으로 드러나는가요?

    그것은 절대적으로 파파지의 은총이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것에는 두 개의 길이 없다. 나는 1월에 있은 삿상에서 그녀를 만났다. 즉시 나는 그녀에게 끌렸다. 천천히 그녀는 나의 가슴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그녀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단지 일어났다. 마침내 우리는 만났다. 우리의 사랑은 나의 아내와 함께 했던 놀라운 사랑과 다른 것이다. 여동생과 같지만 그 이상인 나의 연인 자그루띠도 파파지를 사랑했고, 그와 같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아주 즐거웠다(Jagrouti also loves Papaji, and to be together with a person like that, who is like a sister but more, my lover, is delicious.)
      일단 당신이 자각이나 의식으로부터 바라보게 되면, 어떤 것도 행해지는 것은 없지만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당신은 깨닫게 된다. 당신 자신을 그것에게 내맡길 때, 그때 당신은 참나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포기한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때 당신은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당신은 참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즐겁고 아름답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결정들은 그저 일어나고, 확실히 내가 하는 것은 아니다. 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아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다. 나는 구루의 은총으로 이와 같은 경험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늘 궁금해 한다.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여전히 여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섹스를 즐길까? 집착이 없는 사랑이 있을까? 모든 것은 완전하고 아름답게, 평범하고 단순해졌다. 예, 이것은 적당하고, 더없이 좋다.
      내가 전에 생각했던 것은 ‘나’가 일어난 생각들과 더불어 자아와 단지 연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다. 나는 그것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파파지의 은총으로 뒤로 물러날 때, 자유가 있었다. 모든 것은 아름답고, 자동적이며, 아주 즐겁다. 문제도 더 이상 전혀 문제가 아니다. 럭나우의 소음과 오염도 나를 괴롭히는 소음과 오염이 아니다. 그것들은 일어난다. 그것들은 나타나지만, 그러다 다시 사라진다. 나에게 돈을 구걸하는 이들이나 누군가에게 어떤 주의도 줄 필요가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노력 없이 받아들이고, 일어난 것에 늘 행복하다. 특별한 방식으로 일어난 것에 대해 내려야 할 아무런 판단이 없었다. 더군다나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야 할 어떤 도움도 없다. 단지 물러나 앉아 즐겨라. 어느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지금 달리 보이지만, 다른 방식에서 보면 그것은 같다. 관찰의 관점이 변하였지 내 주위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다. 존재가 있고, 그 존재 속에서, 그 자각 속에서 나는 행위자가 아니며, 일들은 그냥 일어난다. 살아가는 것은 매우 쉽다. 그것이 파파지의 은총이다. 나는 굉장히 감사하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는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며, 평범하다. 상황들은 돌아서 제자리에 왔다. 당신은 더 이상 TV에서 언급되거나 잡지에 기고된 비범한 사람은 아니다. 당신은 단지 인도에서 한명 더 포함된 서양인이지만 그러나 단순하고 평범해서 비범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측면의 비범함이다.

    이것은 드문 일이다. 내가 빠른 길목에서 섬광의 빛을 받으며 가졌던 삶은 인공적이었다. 일단 내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고 나니 꽤 흥미로웠다. 인공적인 것으로 불만족스러워서 나는 결정을 하고 너무나 멈추려고 했지만, 내 삶의 많은 것들이 인공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어서 여전히 나는 멈추는 것을 놓쳤다. 그것은 모두 활동에서 자아가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자아와의 나의 동일시였다. 나는 내가 그것을 하고 있다고 실제로 확신하였다. 일단 그것을 멈추면 자아는 공중으로 돌아다니고 다음의 것은 알지 못한다. ‘나는 미래를 더 이상 구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평범하다. 왜 어느 누구도 나에게 특별한 주의를 주지 않는가?’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자아는 나와 함께 엄청난 게임으로 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노예인 대신에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두었다. 아름다운 한 수피가 말했다. ‘강한 자아는 당신이 더 이상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자아를 바라보는 다른 방식이 있다. 그것은 파파지의 방식이다. ‘자아는 당신의 하인, 당신의 하녀이다. 당신은 하녀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한다. 그녀는 당신의 고용인이다.’ 당신의 마음도 이와 같다. 일단 그것을 통제 아래로 데려온다면, 문제라고 여겨졌던 많은 상황들이 더 이상 문제들이 아니다.

    온 삶은 거대한 릴라(신성한 유희)라는 관점에 이릅니다.

    그렇다. 당신은 온 상황이 놀라운 릴라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전에, 상황들이 나빠지거나 잘못되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것에 주의를 주고, 그것과 동일시하고, 그것이 되었다. 나는 정말 내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을 놀라운 릴라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파지는 ‘지금 당신은 가서, 놀라운 게임을 즐겨요. 이 모든 것은 신성한 연극입니다. 즐기세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정말로 럭 나우(Luck Now)이다. 이것은 아름답다.
      이것은 여기에 있는 축복받은 우리 모두를 위한 그분의 릴라이다. 나는 새로 온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눈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본다. 눈들은 그들이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린다. 그들을 위한 몇 번의 삿상 후에, 시각은 변하고 표현도 변한다. 그들은 파파지와 말했고,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목적했던 것을 가졌다. 그들은 고요하고, 평온하며,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은 파파지 앞에 가고, 그는 그들을 고쳐준다. 그는 그의 자비와 관대함으로 축복한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에 왔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그는 ‘그대의 모든 동생들과 여동생들을 보세요. 우리는 하나의 가족입니다. 걱정할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대는 도착했습니다. 환영합니다.’
      그는 위대한 스승이다. 그가 해야 할 어떤 것은 그에게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다. 그는 그것을 사랑하고 그는 그의 삿상을 사랑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자비로 단지 일어난다. 그가 어떤 남자에게 그 사람이 모든 사람들과 그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그대는 아주 바보이고, 그대는 지금 바로 삿상 집을 떠나야 한다.’라고 말할 때조차도,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그의 자비이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며, 이것은 자비로 행해지는 것이다. 파파지는 그 사람이 간 이후에도 모든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하여 웃음으로 긴장을 제거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 이런, 스승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듯이 그가 웃을 때 우리는 그가 그의 역할을 했고, 그 남자가 보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은 바로 게임이다.
      우리는 그의 자비, 기법, 그리고 놀라운 은총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성 때문에 그런 스승을 가진 것은 행운이다. 파파지는 레슬링 선수였다. 그는 군인, 재가자 이었으며 그리고 가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초기 영적 경험과 라마나와 함께했던 그의 시간들을 제외하고는, 그는 보통의 삶을 살았다. 그는 ‘와서 그것을 가지세요. 그것은 그대의 것입니다. 입니다. 그대는 항상 그것으로 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그저 평범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장애물을 세워두지 않는 않기에 그것은 아름다운 길이다.
      내가 지금 인도에서 경험한 이 길은 그의 은총 때문에 완전하다. 이것은 거대한 즐거움이다. 많은 것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들 모두는 아름답다. 나는 스쿠터를 운전하고, 이것을 사랑한다. 나는 냄새나는 트럭 뒤에 있을 때 이것 또한 여전히 사랑한다(웃음). 이제 그늘에서 조차도 섭씨 45도이지만,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파파지 감사합니다.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께 감사합니다(웃음 뒤에 긴 침묵).

    피터 감사합니다.

    p19
    은총은 깨달음으로 가게 한다.

    p20
    은총은 스승과 그의 고귀한 제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며, 그 밖의 어느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은총과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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