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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 뿐자의 생애

생애 / 가르침 / 미디어 / 갤러리


    슈리 뿐자Sri H.W.L. Poonja는 1910년 10월 13일, 지금은 파키스탄 지역인 펀잡 서부 지방인 파이살라바드Faisalabad에서 브라만 계급인 아버지 파르마난다Parmanand와 어머니 야무나 데비Yamuna Devi의 9자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계는 전통적으로 판디트pandit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시골 역장의 길을 택했다. 그 당시의 전통에 따라 그의 어머니는 리얄푸르Lyalpur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마을 무랄리왈리Muraliwali로 가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외삼촌인 라마 티르타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시골 역장이었던 연고로 이동이 잦았기에 그의 첫 6년은 어머니의 고향에서 주로 살았다. 나중에 아버지는 리얄푸르에 집을 장만하였다. 그곳에서 인도와 파카스탄으로 분할된 1947년까지 보냈다.

    슈리 뿐자의 부모님들은 독실한 힌두교인이었다. 열렬한 크리슈나Krishna 헌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인도의 성자 중 한사람인 스와미 라마 티르타Swami Rama Tirtha의 누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동네 부인들을 오게 하고는 바잔bhajan을 열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헌가를 듣기 위해 집에 모이곤 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제이 시타람Jai Sitaram'이라는 자파japa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슈리 뿐자는 자연적으로 영적 생활에 젖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3-4세 때까지는 외적 모습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이후부터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서 내면에 흐르는 침묵에 잠기곤 하였다. 
    어릴 때 슈리 뿐자는 수행자들의 내면적 삶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러나 곧잘 그들을 흉내내려 했다. 그의 마을 변두리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회교도의 무리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녁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 의식을 행했다. 음식도 주었다. 그는 밤에는 자주 그들이 있는 곳에서 보내고 낮에는 집에서 명상적인 상태에 몰입하였다. 학교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집에 오지 않는 경우에는 아버지가 읍 변두리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그를 찾아내곤 했다. 그때면 그는 아버지에게 "왜 나를 신과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곤 하였다. 
    슈리 뿐자의 매우 주요한 사건이 되는, 최초의 놀라운 사마디의 경험은 여덟 살 때 일어났다. 1919년 영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되자, 학생들에게 한 달간의 방학을 주었다. 승전 축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 예정에 없는 방학을 라호르Lahore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때는 여름이었고 망고가 제철을 만나 풍성하였다. 
    어느 날 저녁, 모두 라호르의 친척집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가 망고와 우유 및 아몬드가 든 음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군침이 도는 음료였다. 그 음료가 컵 가득한 상태로 그에게 건네졌을 때, 그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받을 수가 없었다. 그것을 원치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든 그 경험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크게 놀라고 당황하여 그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그의 눈은 감은 상태이었으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말들을 들을 수 있었고 모든 일을 선명히 자각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어떤 조그만 신체적 반응이라도 전혀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체험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반응할 능력이 마비된 것이었다. 이틀 동안 그는 그 평화롭고 희열과 행복이 넘치는 상태에 머물렀다. 
    그가 깨어나자, 열렬한 크리슈나 헌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그것이 마비가 아니라 신비적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크리슈나를 보았니?”라고 물었다.“아뇨,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행복했다는 것뿐이에요”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는 그가 무슨 체험을 했는지, 무엇이 그런 강렬하면서도 몸을 마비시키는 행복 속으로 갑자기 끌고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자꾸 묻자 그는 "엄청난 행복, 엄청난 평화, 엄청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그는 그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경험은 아니었다. 경험이 일어나자면 경험하는 자와 경험의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가가 그를 안으로 당겨버렸다. 여하튼 그 결과는 그 당시에 그가 행복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친척집에서 리얄푸르로 돌아와 다시 학교에 나갔다. 그러나 항상 그의 마음속에는 "나에게 행복을 준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늘 일어났다. 이 행복은 그를 그것 자체에게로 끌어당겼다. 그의 집에는 큰 정원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렌지 나무숲이 있었다. 그는 그 숲 뒤에 앉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궁금하였다. 종이 위에 아기 모습의 크리슈나를 그리고는 그것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행복이 크리슈나와의 접촉에서 왔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크리슈나의 헌신자가 되길 바랬다. 크리슈나를 명상하고 크리슈나의 이름을 부르길 바랬다. 어머니는 그에게 크리슈나 숭배와 관련이 있는 여러 의식과 수행법들을 가르쳤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서 그에게 크리슈나의 형상에 대한 강렬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강렬한 박티bhakti의 결과로 그가 그림에서 본 모습의 크리슈나가 그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시점에 그는 크리슈나를 신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친구로서 사랑하였다. 그러자 크리슈나가 친구의 모습으로 와서 그와 더불어 놀았다. 크리슈나가 올 때면 그의 방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기도 하였다. 크리슈나는 밤에 정기적으로 나타났다. 그와 놀다가 침대에서 자려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에는 이분이 힌두교의 위대한 신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이 신의 희미한 모습이라도 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 생애를 보내고 있는가...
    크리슈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기도 하였고, 미묘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였다. 그가 그를 보지 않으려고 담요를 뒤집어쓰도 그를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보였다. 잠자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다소 귀찮기도 하여 어머니께 가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어머니께는 관심이 없는 듯 하였다. 그는 그것을 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크리슈나에게 사랑한다고 엽서를 보내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 배달부를 통해 그에게 오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크리슈나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는 학교 공부에 더욱 관심이 없어졌다. 그가 교실에 앉아 있어도 그의 마음과 가슴은 크리슈나의 모습에 젖어 들었다. 희열의 물결이 내면에서 물결칠 때면, 그는 그 자신을 그 경험에 맡겨 외부 세상과의 접촉을 잃곤 하였다. 그는 온밤을 명상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빛의 홍수를 보기도 하였다. 깊은 명상에 들어갈 때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도 불가능하였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그는 내적 평화를 즐기며 앉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크리슈나에 대한 박티의 길 이외에도 베단타Vedanta를 배우고 있었다. 그녀는 유명한 베단타 스승을 여럿 두고 있어 그는 어머니와 함께 베단타를 배우는 곳에 참석하곤 하였다. 그때가 아마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그 경전들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지만, 그는 열심히 배웠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베단타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집에서 그에게 배단타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녀는 베단타의 유명한 많은 시행을 암송할 수도 있었다. "나는 브라만이다. 온 우주에 브라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것이다"라고 읊기도 하였다. 
    그가 여덟 살 때 체험한, 매혹적인 망고 음료수를 앞에 두고 일어났던 신비스러운 행복의 경험은 그를 붓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열 세 살 때쯤에 그는 학교의 역사책에 나오는 붓다를 보았다.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붓다에게 이끌렸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이 아주 궁금하였다. 이것은 사랑도 아니었다. 사랑에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과 사랑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 상태에서 그는 절대적으로 홀로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어떤 단어를 가져와도 그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붓다의 신체적 형상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붓다를 흉내내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명상을 어떻게 하는 지는 몰랐지만 장미넝쿨 아래에서 그림에서 본 그대로의 명상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나도 저 분처럼 될 수 있어. 내 삶의 방식을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저 분처럼 만들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하고 또 만족했다. 그는 붓다와 더욱 비슷해지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해골처럼 만들기도 하였다. 또 책에는 붓다가 주황색 옷을 입고 발우를 든 채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탁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몰래 어머니의 사리를 꺼내 주황색으로 물을 들여 그럴듯하게 몸에 두르곤 동네를 다니며 탁발승 흉내를 냈다.

    그의 나이 열 다섯, 매년 열리는 홀리 축제 기간이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그에게 파코라Pakora를 두 개 주었다. 그것은 아주 맛이 있었다. 그가 몇 개 더 달라고 하자 놀랍게도 친구의 어머니는 거절했다. 그 속에는 방Bhang이 들어 있었다. 방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는 잎이었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축제 기간 동안에 음식에 사용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는데 자꾸 식욕이 당겼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그가 파코라를 먹었다는 것을 알곤 크게 웃었다. 그날 밤은 그의 식구들이 한방에서 잤다. 그런데 한밤중 그가 일어나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당신은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곧 깊은 명상에 들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그날 먹은 방의 효과가 다 가시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새벽 3시에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이상한 알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깨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깊은 명상 속에 잠겨 있었다. 의사를 불러 진단해보니 그 의사는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면서 깊은 명상 중에 있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주고 갔다. 그날 밤 내내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그는 사마디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종일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계속했다. 동네의 한 판디트pandit가 그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저 소년은 야주르 베다Yajur Veda의 한 부분을 산스크리트어로 암송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를 알지 못했고 야주르 베다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방은 틀림없이 그의 전생에 남아있던 기억들과 지식들을 그에게 유발시켰음에 틀림없다. 그 이후, 그는 여전히 산스크리트어나 야주르 베다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채 일상 생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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