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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

생애 / 가르침 / 미디어 / 갤러리


만남- 폴 브런톤 2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17-09-28 20:36     조회 97

    다음은 몇 달이 지난 후 Bunton의 두 번째 방문과 슈리 라마나 곁에서의 체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든지 나의 뇌에 서서히 스며드는 온화한 발산을 가진, 그 장소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점점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단지 마하리쉬 가까이에 잠시 앉아있는 것만으로 형언할 수 없는 평온을 누린다. 세심한 관찰과 잦은 분석으로 나는 이윽고 우리의 존재가 서로 가까이 있을 때 상호간의 영향력이 생긴다는 완벽한 확신에 이른다. 이것은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결국 나를 휩싸는 것으로 끝날 때까지 나의 합리적 마음보다 더 큰 힘이 나에게 경외심을 갖게 한다.


      나의 모든 의문들은 끝없는 게임, 그 범위에 있어 한계가 없는 생각의 놀이 안에서의 움직임이고, 내 안의 어딘가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진리의 물을 나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확신의 우물이 있으며, 나의 질의와 나의 영적 본성의 엄청난 힘을 깨달으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나의 경탄을 통해 깨달음은 스스로 힘을 발한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기다린다.
      나는 나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숭고한 깨달음은 단지 이 신비하고 침착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텔레파시 열의 퍼지는 잔물결일 뿐이라는 것을 완전히 의식한다.
      마하리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본래 약하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실제 본성은 신성하고 강하다. 약하고 악한 것은 그의 습관, 그의 욕망과 생각이지 그 자신이 아니다.” 그의 말은 기운을 북돋우는 강장제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말들은 나에게 생기를 주고 고무시킨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으로는, 변변치 않고 힘이 없는 영혼으로부터는 그런 가치 있는 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그것들을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현자는 대단하고 믿을 만한 영적 경험의 깊이로부터 말하는 것이지 추측이라는 가느다란 기둥 위에 있는 이론을 제시하는 철학자로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내면의 모니터가 나에게 장담한다.


      꽤 많은 서양의 사고방식들은 분명 마하리쉬의 삶이 헛된 삶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영원한 활동으로부터 떨어져서 우리를 위해 멀리서 그것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조금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또한 그의 발 앞에 스스로 굴하는 밀림의 현자는 모든 상황에서 이리저리 날려 다니는 세상의 바보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의 위대함에 대한 생생한 말들이 매일매일 나온다. 그의 침묵과 신중함은 습관적이다. 그가 하루에 사용하는 단어의 수는 쉽게 셀 수 있을 정도이다.
      마하리쉬가 다른 이들을 돕는 방식은 지나치게 야단스럽지 않고 조용하며, 한결 같은 치유의 진동을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흘려보내주는 것을 통해서임을 나는 보고 배우고 있다. 이 신비스러운 텔레파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언젠가는 과학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단지 그의 존재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적 확신, 정서적 행복,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역설적으로 그들의 신념에 새로워진 믿음을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자는 모든 신조들을 똑같이 대하고, 예수를 크리슈나만큼이나 존경하기 때문이다.
      현자의 아주 가까이에서 매일 명상을 하는 동안, 나는 어떻게 내 생각을 항상 깊어지는 지점까지 안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배웠다. 나는 이 조용한 휴식의 기간 동안 그가 나의 마음을 그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의 침묵이 왜 그의 말보다 더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이 힘은 너무나 커서 그는 가장 충격적인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되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따를 것이라고 느낀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마하리쉬는 그를 따르는 자들을 굽실거리는 순종의 사슬로 묶을 사람은 아니며,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행동의 자유를 허락한다. 이 점에서 그는 내가 인도에서 만난 대부분의 스승이나 요기들과 아주 참신하게 다르다.
      그의 메시지의 요지는 이러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지독하게 추구하라. 그대의 전체적인 인격을 분석하라. ‘나’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찾아내려고 애써라. 명상을 계속하라. 계속해서 집중을 안으로 돌려라. 언젠가는 생각의 바퀴가 느려지고 직관이 생겨날 것이다. 그 직관을 따르고 그대의 생각이 멈추게 하면 그것은 결국 그대를 목표로 이끌 것이다.”
      나는 매일 나의 생각들과 싸우고, 마음 안쪽 깊은 곳으로 천천히 잘라낸다. 마하리쉬 가까이에 있는 것의 도움으로, 나의 명상과 독백은 갈수록 덜 피곤하고 더 효과적이게 된다. 강한 기대와 인도받고 있다는 느낌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나의 노력을 격려한다. 나의 사고방식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현자의 보이지 않는 힘을 내가 분명히 의식하는 이상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 결과로 나는 인간의 마음을 둘러싸는, 가려진 존재의 경계 지역 안으로 훨씬 더 깊이 파고든다.


      나는 그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점차 영적 진리의 발견이 오늘날 금광의 발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던 먼 과거의 어린 아이를 그의 안에서 보게 된다. 이 조용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남인도의 한 구석에서, 내가 인도의 마지막 영적 초인들 중 한명에게 이끌렸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이 살아있는 현자의 담담한 모습은 이 나라 고대 리쉬들의 전설적인 모습을 나에게로 더 가까이 가져다준다. 사람은 이 사람의 가장 경이로운 부분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는 느낀다. 많은 지혜를 가진 것으로 사람이 본능적으로 인지하는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은 사람을 피한다. 그는 때로는 이상하게도 냉담하고, 또 어떤 때는 그의 내부 은총의 다정한 축복이 쇠테로 나를 그에게 묶는다. 나는 그의 인격의 수수께끼에 굴복하고, 내가 알게 된 대로의 그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진정한 위대함의 기류가 그의 주변에 너무나도 분명할 때에도 그가 아주 소박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한다; 신비를 좋아하는 국민들의 천성에 깊은 인상을 주는 오컬트 힘과 신비의식 해설자에 대해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허세의 흔적이 전혀 없으며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성인으로 공표하려는 모든 노력에 강력히 저항하기 때문에.


      마하리쉬 같은 사람들의 존재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종교들로부터의 신성한 메시지가 역사를 통해 지속되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 같이 보인다. 더 나아가서 그런 현자는 우리와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것을 드러내 주기 위해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그의 가르침들은 나에게 강한 호소력을 가진다.
      그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져오지도 않고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것으로 인해 유망한 많은 항해들이 끝내는 난파되고 말았던, 어둡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물의 마법을 피한다. 그는 단순히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고대나 현대의 이론, 믿음들과 관계없이 수련될 수 있는 자기 분석의 길, 마침내는 사람을 진정한 자기 이해로 이끌어 줄 길을 제안한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나는 자꾸만 마하리쉬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영적으로 나의 삶은 그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홀(hall)로 들어가 바로 나의 일상적인 명상 자세를 취한다. 눈을 감으면 강렬한 의식의 내면화가 찾아온다. 나의 마음의 눈앞에 마하리쉬가 앉은 형상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 다음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친숙한 존재감만을 나에게 남겨둔 채 그림이 사라진다.


      오늘밤 나는 집중의 조준점에 재빨리 빛을 비춘다. 새롭고도 강한 힘이 나의 내면의 세계 안에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저항할 수 없는 속도로 나를 안으로 데리고 간다. 다음 단계에서, 나는 그것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지성과는 떨어져 서서 기이한 무심함으로 생각들을 지켜본다. 지금까지는 그저 평범한 자부심의 문제였던 생각하는 힘이, 내가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잡혀 있었다는 것을 놀랍도록 분명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할 것이 되어버린다.
      한쪽으로 물러서서 뇌의 작용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바라볼 수 있고 어떻게 생각들이 생겨나서 사라지는지를 보는 것도 충분히 이상한 일인데, 누군가가 사람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신비 속으로 뚫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더더욱 이상한 일이다. 나는 지도에도 없는 대륙에 상륙하려고 하는 콜럼버스와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침내 그것이 일어난다. 심지가 꺼진 초처럼 생각은 소멸된다. 마음은 초월적인  근원에서 생겨난다. 나는 완벽히 평온하게 남아있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완전히 의식한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나의 감각은 독립된 인격의 좁은 한계로부터 끌어내어졌다; 그것은 숭고하게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되었다. 자아는 아직 존재하지만 그것은 변화되고 빛나는 자아이다. 그것이 놀랍도록 새로운 완벽한 해방감에 도달해서, 생각은 항상 앞뒤로만 오가는 베틀 북과도 같기 때문에, 그것의 폭압적인 움직임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은 감옥에서 나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는 세상 의식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나를 숨겨주었던 행성은 사라진다. 나는 타는 듯한 빛이 내리쬐는 바다의 한 가운데에 있다. 후자는 그것으로부터 세상이 창조된 태고의 물질, 최초의 물질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기보다는 느낀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생기가 넘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공간속으로 넓게 펼쳐진다.
      나, 새로운 나는 신성한 희열의 무릎에서 쉰다. 나는 플라토닉한 레테의 잔을 마셨기에, 어제의 쓴 기억들과 내일의 불안한 염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신성한 해방과 말로는 거의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얻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단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능한 심오한 방식으로 내가 이해하기에 나의 팔은 엄청난 연민으로 모든 창조를 껴안는다. 나의 가슴은 황홀하여 다시 만들어진다.
      땅거미가 지면 나는 마하리쉬를 제외한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영적 확신을 위한 나의 전투가 승리를 거두었고, 내가 아끼며 간직한 합리주의를 맹목적인 믿음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이겼기 때문에 나는 아주 만족한다. 그러나 마하리쉬가 잠시 후 나와 함께 뜰로 나갔을 때, 나의 만족은 갑자기 나를 떠난다.


      이 사람은 이상하게도 나를 정복했고, 그것은 그를 떠날 것이라는 나의 감정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그가 비록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풀어주기 위해, 그 사람을 자신에게로 되찾아오려고만 했을지라도, 그는 쇠보다도 단단한 보이지 않는 고리로 그의 영혼에 나를 붙들어 맨다. 그는 나를 나의 영적 자아의 온화한 존재로 변화시켜 의미 없는 기간을 살아있고 희열의 경험으로 해석하도록 도와주었다. 자기 변형의 나의 모험은 이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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